AI 메모리 호황 한복판, 사상 최대 실적이 예고되던 SK하이닉스의 주가가 하루 만에 19%나 빠진 일이 있었습니다. 시장이 놀란 이유는 실적도 환율도 아니라, 미국 워싱턴에서 날아온 한 통의 통지문 때문이었죠. 이 글은 ITC 337조 조사가 한국 반도체에 어떻게 다가왔는지를 짚고, '특허괴물'이라 불리는 NPE의 정체를 정리하고, 왜 한국 기업이 자꾸 표적이 되는지를 차근차근 풀어봅니다. 미국 진출을 준비하는 모든 회사에 결국 같은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ITC 337조 조사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2026년 3월 26일, 모놀리식 3D라는 회사의 청구를 받아들여 SK하이닉스와 일본 키옥시아에 대한 관세법 337조 조사를 공식 개시했습니다. 분쟁 대상은 SK하이닉스의 HBM2E, HBM3, HBM3E와 3D 낸드 전 제품. AI 서버 한 대에 들어가는 메모리 거의 전부에 해당하는 라인업이죠.
모놀리식 3D는 자사가 보유한 '3D 적층' 관련 미국 특허(US 531호 외 다수)를 SK하이닉스가 침해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실 여부는 앞으로 1년 넘게 다툴 일이지만, 시장은 한 가지 가능성에 즉각 반응했어요. ITC가 침해를 인정하면 'Exclusion Order', 즉 미국 시장으로의 수입금지 명령이 떨어질 수 있거든요. AI 시대 핵심 부품의 공급선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신호가 주가에 그대로 반영된 셈입니다.
ITC 337조는 미국 연방지방법원의 일반 특허 소송과 결이 다릅니다. 손해배상금을 받는 게 목적이 아니라, '미국 시장으로 침해 제품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무역 조치예요. 보통 12-18개월 만에 결정이 나오기 때문에, 일반 특허 소송이 3-5년씩 끄는 것에 비해 훨씬 빠르고 압박이 강합니다. 한 번 수입금지 명령이 떨어지면 미국 매출이 사라지는 셈이라, 기업 입장에서는 불확실성을 견디기 힘들죠. 그러다 보니 합의 테이블에 빠르게 앉게 되고, 이게 청구인 입장에서는 매우 효율적인 무기가 됩니다.
NPE의 정체
이름은 무섭지만 정체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제품을 만들지 않고, 공장도 없고, 직원 대부분이 변호사·라이선스 매니저인 회사. 영어로는 NPE(Non-Practicing Entity), 우리말로는 '특허괴물'이라 부르죠. 이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특허를 사들이거나 직접 등록한 뒤, 다른 기업이 해당 기술을 쓰면 라이선스료나 배상금을 받아내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무기를 직접 만들지는 않고, 무기 도면만 들고 다니며 "이거 너희가 쓰고 있지?"라며 통행세를 받는 사람들이에요. NPE 자체가 불법은 아닙니다. 특허는 발명자에게 일정 기간 독점권을 주는 제도이고, 그 권리를 양도·매매하는 것 또한 합법이거든요. 문제는 이들이 사용하는 무기, 특히 ITC 337조 같은 절차의 강력함에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모놀리식 3D가 처음 등장한 회사가 아니라는 점이에요. 작년 말 삼성전자는 미국 NPE 넷리스트와의 HBM 특허 소송에서 텍사스 연방법원으로부터 1억 1,800만 달러 배상 평결을 받았습니다. SK하이닉스도 2021년 같은 회사와 4,000만 달러에 합의한 전력이 있어요. 한 번 합의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NPE가 또 다른 특허로 다시 찾아오는 구조라는 점이 가장 큰 부담입니다. NPE 생태계는 분명 학습합니다. 어디서 무엇을 받아낼 수 있는지를 데이터로 쌓아두고 다음 라운드를 준비하거든요.

표적이 되는 이유
한국 기업이 미국에서 5년 동안(2020~2025) 받은 특허침해 소송이 610건입니다. 그중 90% 이상이 미국 본토에서 제기됐고, 다수가 NPE 발이에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구조적인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미국 매출 비중입니다. 글로벌 반도체·디바이스 기업일수록 미국 시장 비중이 크고, 그래서 ITC 수입금지의 충격도 큽니다. NPE는 충격이 큰 곳을 골라 들어가요. 둘째, 카운터 특허(역제소용 특허)가 부족합니다. 사업회사 간 분쟁이라면 "너희도 우리 특허 침해했다"며 맞제소가 가능한데, NPE는 제품이 없어서 역제소가 통하지 않습니다. 한쪽만 맞는 비대칭 게임인 거죠. 셋째, 합의 학습효과입니다. 한 번 합의금을 받아낸 NPE 생태계는 "한국 기업은 합의를 잘 한다"는 데이터를 쌓고, 다음 라운드를 준비합니다.
그래서 슈퍼사이클이 강해질수록, 즉 한국 기업의 미국 매출이 커질수록, NPE의 사냥철도 같이 길어지는 구조예요. 이 이야기는 대기업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스타트업이나 중견기업도 매출이 미국으로 본격적으로 넘어가는 순간 같은 무대에 서요. 오히려 자원이 부족한 회사일수록 한 번의 NPE 분쟁으로 받는 충격이 더 큽니다. 그래서 미국 진출 전에 프리덤투오퍼레이트(FTO) 분석, 카운터 특허 확보, NPE 모니터링이라는 세 가지를 한 번 점검해두면 좋습니다. 우리 제품이 다른 누군가의 특허를 밟지 않는지 사전에 지도를 그리고, 협상 테이블에서 꺼낼 카운터 특허를 손에 쥐고, 우리 기술 분야의 NPE가 어떤 특허를 사 모으는지 정기적으로 들여다보는 일이죠.
SK하이닉스 한 회사의 일이 아닙니다. 글로벌 무대로 나가는 모든 한국 기업이 언젠가는 마주칠 풍경이에요. 특허는 등록하고 끝나는 비용 항목이 아니라, 미국 시장이라는 거친 바다에서 우리 회사를 지키는 일종의 보험입니다. 같은 보험이라도 미리 들어두면 보험료가 싸지고, 일이 터진 뒤에 들면 가입 자체가 어려워지죠.😊 글로벌 진출을 준비 중이거나 이미 미국에서 매출이 발생하고 있다면, 이 분야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을 때 편하게 문의해주세요.